커피와 술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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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나냐 댓글 0건 조회 712회 작성일 23-02-04 16:10본문
커피와 술의 차이
커피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의 아라비카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세계적인 음료입니다. 맥주나 와인 만큼이나 세계적인 음료입니다. 그러나 맥주나 와인과는 달리 기독교인들에게도 거부감이 전혀 없는 음료입니다. 물론 맥주나 와인도 어떤 기독교인들에게는 전혀 거부감이나 거리낌이 없는 음료이지만, 커피에 비하면 여전히 신앙적으로 논란이 야기될 수 있는 음료라는 점에서 커피와 술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커피도 한 때는 기독교사회에서 악마의 음료로 규정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커피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 건너갔고, 술을 금하는 이슬람사회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커피가 기독교 사회로 진입하려고 할 때, 종교적인 편견의 높은 장벽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커피의 깊은 맛에 매료되어서, 비록 악마의 음료라고 하더라도 세례를 주어서 악마를 바보로 만들고 기독교 음료로 만들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거부감의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커피가 기독교 사회에서도 전혀 거부감이 없는 음료가 된 데에는 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술은 커피와 마찬가지로 비본질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독교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커피는 삶을 나누고, 더 깊은 생각을 할 때 좋은 친구가 된다면, 술은 인생의 흥을 돋우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보다 술은 폭음으로 이성을 잃는 피해를 불러온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세례는 아무나 줄 수 없는 것처럼 술은 세례를 주기 쉽지 않은 거부감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커피처럼 세례를 주고 변화시켜 사용할 수 있는 많은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관용의 지혜가 필요함을 생각해 봅니다. 본질에는 일치하고, 비본질에는 관용하며, 모든 것은 사랑으로 하나되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꿈꿉니다.
디모데전서 4장 4절-5절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림출처 : https://blog.naver.com/smartsnsk/222774056434
커피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의 아라비카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세계적인 음료입니다. 맥주나 와인 만큼이나 세계적인 음료입니다. 그러나 맥주나 와인과는 달리 기독교인들에게도 거부감이 전혀 없는 음료입니다. 물론 맥주나 와인도 어떤 기독교인들에게는 전혀 거부감이나 거리낌이 없는 음료이지만, 커피에 비하면 여전히 신앙적으로 논란이 야기될 수 있는 음료라는 점에서 커피와 술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커피도 한 때는 기독교사회에서 악마의 음료로 규정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커피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 건너갔고, 술을 금하는 이슬람사회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커피가 기독교 사회로 진입하려고 할 때, 종교적인 편견의 높은 장벽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커피의 깊은 맛에 매료되어서, 비록 악마의 음료라고 하더라도 세례를 주어서 악마를 바보로 만들고 기독교 음료로 만들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거부감의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커피가 기독교 사회에서도 전혀 거부감이 없는 음료가 된 데에는 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술은 커피와 마찬가지로 비본질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독교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커피는 삶을 나누고, 더 깊은 생각을 할 때 좋은 친구가 된다면, 술은 인생의 흥을 돋우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보다 술은 폭음으로 이성을 잃는 피해를 불러온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세례는 아무나 줄 수 없는 것처럼 술은 세례를 주기 쉽지 않은 거부감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커피처럼 세례를 주고 변화시켜 사용할 수 있는 많은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관용의 지혜가 필요함을 생각해 봅니다. 본질에는 일치하고, 비본질에는 관용하며, 모든 것은 사랑으로 하나되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꿈꿉니다.
디모데전서 4장 4절-5절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림출처 : https://blog.naver.com/smartsnsk/222774056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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